밀양

어제 밀양을 봤다. 영화를 본 후 만 하루 동안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괴로왔다. 그러면서 몰입했다. 오랫만에 카타르시스라는 고전적인 경험을 했다.

영화를 보며 코로 냄새를 맡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약국의 알콜냄새, 약간은 비릿한 밀양의 개천 냄새, 교도소 주차장의 흙냄새를 맡았다.

1. 신애

전도연은 아프고, 못생기고, 작고 가냘팠다. 바짝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처럼 금새 부서질 것 처럼 보였고, 나중에는 정말 부서져 버렸다. 사과 두조각을 베어먹은 과도로 손목을 자르고, 피 흘리며 길거리에 나와 '살려주세요'라고 할 때 전도연은 성녀처럼 보였다.

2. 종찬

송강호는 천사였다. 마지막 장면, 전도연이 마당 의자에 앉아 거울을 보며 스스로 자기 머리를 가위로 자를 때, 나는 송강호가 등장해서 전도연의 머리를 대신 잘라 줄 거라 생각했다. 송강호는 머리를 잘라주는 대신 전도연이 보기 편하게 거울을 잡아 준다. 내가 무너져 내린 것은 이 장면이었다. 전도연의 숨겨진 햇빛, 밀양은 송강호였던 것이다. 구원은 송강호에게 있다.

3. 사죄

전도연은 운전하다 사람을 치일 뻔 하고, 화가난 여인은 전도연에게 이렇게 쏘아붙인다. "사람을 죽여놓고 미안하다면 다에요?" 난 오늘까지 그 질문의 답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다.

4. 강

형사들이 옹기종기 강가에 모여 있고, 전도연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몇번이나 미끄러지며 강가로 내려간다. 허리를 약간 굽혀 아들의 시체를 확인하는 전도연의 모습은 너무 가냘프고 불안해서  현실 아닌 어떤 것 처럼 보인다.


5. 미장원 소녀

납치범의 딸, 사고쳐서 학교 그만 두고 미장원 보조로 일하는 그 소녀. 전도연의 아들 준의 죽음에 이 소녀는 어떤 관련이 있었을까? 전도연이 돈을 쓰레기통에 넣고 돌아올때 그 소녀는 전도연과 마주친다. 어쩌면 그 돈을 집어간 것도 이 소녀였을지 모른다. 텅빈 전도연의 피아노 학원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그만 아버지의 범죄를 밝혀버린 이 소녀는 분명 아버지가 저지른 죄악이 무엇인지 알았을 것이다.
전도연에게 어색하게 '이 정도로 머리를 자르시면 예쁠 거에요'라고 말하던 소녀는 조금 후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한다. 그리고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6. 용서

용서는 남이 아닌 나에게 하는 것이다. 구원은 건져올려주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바라봐 주는 것이다.

by 데인 | 2007/09/27 03:46 | | 트랙백 | 덧글(3)

트랙백 주소 : http://dane.egloos.com/tb/79609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at 2007/09/27 03: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데인 at 2007/09/27 11:03
용서란 무엇일까요? 사죄란 무엇일까요?
내가 만약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그것을 사과할까요. '미안합니다'라고 말한마디 하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미안한다는 말을 해도 죽은 사람은 살아나지 않죠. 나는 내가 죽인 사람과, 그 죽은 사람을 사랑하던 사람과, 나의 행동으로 인해 더럽혀진 세상과,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과 화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화해한 이후에 가장 마지막에 나의 죄악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당사자, 나의 영혼과 화해할 수 있겠죠.

용서와 사죄란 엄청난 과업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불가능하죠. 어떻게 누군가를 용서하는게 가능할까요. 어떻게 사죄해야 할까요.

이것이 '밀양'을 관통하는 큰 주제였고, 전도연이 사람을 칠뻔했던 그 장면에서 이 주제를 요약해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닏.
Commented by 배우다일 at 2007/10/11 02:01
저도 밀양을 상당히 재밌게 봤습니다.
종교적인 입장이 아닌 인간적으로 밀양을 바라보신 분이
여기또 계셔서 너무나 반가워서 댓글을 남기네요~
용서라는 책을 군복무기간에 읽은적이 있습니다.
기억나는 내용이 별로 없는걸보니 제가 집중을 안했거나,
책이 흥미가 없거나, 제가 이미알고 있는 것이었나 봅니다.
데인님의 글을 읽고나서 용서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