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6월 13일
데르수 우잘라 (1975)
제목 : 데르수 우잘라
감독 : 구로사와 아키라
제작연도 : 1975
컬러






1910년, 한 러시아 사나이가 시베리아의 한 건설현장에 서 있다. 그의 친구 '데르수 우잘라'의 무덤을 찾아온 그는 무덤 옆에 서 있던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기억하고 있지만, 아마도 개간 중에 나무를 잘라버린 것 같다는 싸늘한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다. 쓸쓸히 돌아선 그는 입속으로 친구의 이름을 불러 본다. "데르수".
이 러시아 사람은 시베리아 우수리 강 유역의 지도 작성의 책임을 맡고 이 지방을 탐사중이던 러시아군 장교 아르세니에프였다.1902년 1개 분대 정도의 부하들만을 이끌고 험하기 짝이 없는 시베리아의 골짜기들을 헤매던 그는 우연히 한 시베리아 원주민 사냥꾼인 '데르수 우잘라'를 만나게 된다. 순박하기 짝이 없지만 시베리아 원시림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정통한 이 노인에게 아르세니에프는 마음이 끌린다. 사고로 가족을 잃고 평생을 숲에서 혼자 살면서 배운 데르수의 삶의 지혜들로 부터 아르세니에프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 시베리아의 사냥꾼 데르수 우잘라
* 러시아 장교 아르세니예프

내가 지난 길을 따라 올지도 모를 낯 모르는 사람을 위해 움막과 식량을 준비해주고,사냥꾼이면서도 결코 섣불리 살생을 일삼지 않는 데르수. 아르세니에프를 따라 몇달간 동고동락하며 때로는 생명까지 위험한 일을 당하면서까지 길을 안내해 주고서도 그 댓가로 총의 탄창 몇개를 요구하지 못해 수줍어하는 착하디 착한 그에게 아르세니에프는 깊은 신뢰와 우정을 느끼게 된다.





탐사를 마친 아르세니에프와 데르수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체 헤어지지만, 5년 뒤 다시 탐사임무수행에 나선 아르세니에프는 데르수와 재회하는데 성공한다. 이제는 많이 늙어 예전 같지 않게 실수도 많아진 데르수였지만 여전히 아르세니에프에겐 든든한 동반자였다. 그러나 어느 날, 길에서 마주친 호랑이를 쏘아버린 데르수는 숲의 정령이 자신을 저주할 것이라 믿게 되고, 더우기노쇠해진 그의 시력 때문에 사냥꾼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게 된 데르수는 아르세니에프를 따라 도시로 나가게 된다.
그러나 숲을 떠난 도시 생활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던 데르수는 아르세니에프에게 자신을 다시 숲으로 보내달라 청한다. 아르세니에프는 마지막 작별 선물로 데르수의 노쇠한 눈으로도 사냥감을 맞출 수 있는 최신형 라이플을 건네준다. 그러나 얼마 후 아르세니에프는 데르수가 사망했다는 전보를 받게 되는데,서둘러 무덤으로 뛰어간 그는 자신이 선물한 라이플을 노리고 누군가가 데르수를 살해한 것 같다는 경관의 성의없는 답변을 듣게 된다.

구로사와의 마지막 흑백 영화이자 제작 과정에서 여러 잡음을 일으켰던 "붉은 수염 (1965)" 이후 구로사와는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 기회를 잡지 못한다. 5년 만에 새로 찍은 영화가 그의 최초의 컬러 "도데스카덴 (1970)" 이었다. 흥행에 실패한 도데스카덴 이후 구로사와는 더 이상 일본에서 영화제작이 불가능해진다.
1971년에 이르러 구로사와의 좌절감은 극도에 달했으며 이 해 그는 자살을 기도한다. 손목을 여덟번, 목을 여섯번이나 칼로 그었지만 그는 살아났다. 일본에서 자본 조달이 더 이상 불가능했던 구로사와를 구원한 것은 소련 정부였다. 구로사와는 건강을 회복한 이후 거의 4년에 걸쳐 제작한 작품이 데르수 우잘라(1975)였다.
데르수 우잘라는 실존 인물이며, 러시아군 장교였던 아르세니예프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구로사와는 영화를 찍었다. 아르세니예프의 회고록은 이미 1961년에 한번 소련에서 영화화 된 적이 있을 정도로 인기있는 대본이었다. 구로사와는 데르수 우잘라로 1975년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다.
이후에도 구로사와의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데르수 우잘라 이후 구로사와는 5년의 공백기 끝에 1980년 '카게무샤'를 만든다. 이 영화 조차도 코폴라, 루카스, 스필버그등의 전적인 지원에 힘입어 20세기 폭스사에서 자금을 댔기 때문에 제작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70mm 필름으로 촬영되어 시베리아의 아름다운 풍광을 잡아낸 데르수 우잘라는 그 수려한 영상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지혜로우면서도 소박한 순수한 인간 데르수 우잘라는 후기작 '마다다요'의 우치다 교수이며 또한 평생 영화 만드는 것 이외에는 다른 관심이 없었던 구로사와 본인의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는 캐릭터다. 구로사와의 영화에서 모범적인 영웅은 '붉은 수염' 이후 자취를 감춘다. 암울해진 그의 영화는 이제 문명을 비판하고 순수하고 선한 인간이 어떻게 파괴되는 가를 묘사하기 시작한다.
마치 구로사와 본인처럼, 말년의 데르수는 갈 곳이 없다. 시베리아의 대지로 돌아가기엔 이제 그는 너무 늙어버려 사냥감을 제대로 겨냥조차 할 수 없다. 러시아의 도시는 데르수에게 최악의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아르세니예프는 문명의 이기인 최신식 라이플을 주어 데르수를 시베리아로 돌려 보내지만, 데르수를 죽이는 것은 바로 그 문명의 이기다. 시베리아를 좀먹어들어가는 근대화의 물결은 끝내 데르수의 무덤 마저 파괴해 버리고, 아르세니예프의 추억 말고는 이제 데르수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다.
감독 : 구로사와 아키라
제작연도 : 1975
컬러






* 데르수 우잘라 예고편 동영상
1910년, 한 러시아 사나이가 시베리아의 한 건설현장에 서 있다. 그의 친구 '데르수 우잘라'의 무덤을 찾아온 그는 무덤 옆에 서 있던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기억하고 있지만, 아마도 개간 중에 나무를 잘라버린 것 같다는 싸늘한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다. 쓸쓸히 돌아선 그는 입속으로 친구의 이름을 불러 본다. "데르수".
이 러시아 사람은 시베리아 우수리 강 유역의 지도 작성의 책임을 맡고 이 지방을 탐사중이던 러시아군 장교 아르세니에프였다.1902년 1개 분대 정도의 부하들만을 이끌고 험하기 짝이 없는 시베리아의 골짜기들을 헤매던 그는 우연히 한 시베리아 원주민 사냥꾼인 '데르수 우잘라'를 만나게 된다. 순박하기 짝이 없지만 시베리아 원시림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정통한 이 노인에게 아르세니에프는 마음이 끌린다. 사고로 가족을 잃고 평생을 숲에서 혼자 살면서 배운 데르수의 삶의 지혜들로 부터 아르세니에프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내가 지난 길을 따라 올지도 모를 낯 모르는 사람을 위해 움막과 식량을 준비해주고,사냥꾼이면서도 결코 섣불리 살생을 일삼지 않는 데르수. 아르세니에프를 따라 몇달간 동고동락하며 때로는 생명까지 위험한 일을 당하면서까지 길을 안내해 주고서도 그 댓가로 총의 탄창 몇개를 요구하지 못해 수줍어하는 착하디 착한 그에게 아르세니에프는 깊은 신뢰와 우정을 느끼게 된다.





탐사를 마친 아르세니에프와 데르수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체 헤어지지만, 5년 뒤 다시 탐사임무수행에 나선 아르세니에프는 데르수와 재회하는데 성공한다. 이제는 많이 늙어 예전 같지 않게 실수도 많아진 데르수였지만 여전히 아르세니에프에겐 든든한 동반자였다. 그러나 어느 날, 길에서 마주친 호랑이를 쏘아버린 데르수는 숲의 정령이 자신을 저주할 것이라 믿게 되고, 더우기노쇠해진 그의 시력 때문에 사냥꾼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게 된 데르수는 아르세니에프를 따라 도시로 나가게 된다.
그러나 숲을 떠난 도시 생활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던 데르수는 아르세니에프에게 자신을 다시 숲으로 보내달라 청한다. 아르세니에프는 마지막 작별 선물로 데르수의 노쇠한 눈으로도 사냥감을 맞출 수 있는 최신형 라이플을 건네준다. 그러나 얼마 후 아르세니에프는 데르수가 사망했다는 전보를 받게 되는데,서둘러 무덤으로 뛰어간 그는 자신이 선물한 라이플을 노리고 누군가가 데르수를 살해한 것 같다는 경관의 성의없는 답변을 듣게 된다.

구로사와의 마지막 흑백 영화이자 제작 과정에서 여러 잡음을 일으켰던 "붉은 수염 (1965)" 이후 구로사와는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 기회를 잡지 못한다. 5년 만에 새로 찍은 영화가 그의 최초의 컬러 "도데스카덴 (1970)" 이었다. 흥행에 실패한 도데스카덴 이후 구로사와는 더 이상 일본에서 영화제작이 불가능해진다.
1971년에 이르러 구로사와의 좌절감은 극도에 달했으며 이 해 그는 자살을 기도한다. 손목을 여덟번, 목을 여섯번이나 칼로 그었지만 그는 살아났다. 일본에서 자본 조달이 더 이상 불가능했던 구로사와를 구원한 것은 소련 정부였다. 구로사와는 건강을 회복한 이후 거의 4년에 걸쳐 제작한 작품이 데르수 우잘라(1975)였다.
데르수 우잘라는 실존 인물이며, 러시아군 장교였던 아르세니예프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구로사와는 영화를 찍었다. 아르세니예프의 회고록은 이미 1961년에 한번 소련에서 영화화 된 적이 있을 정도로 인기있는 대본이었다. 구로사와는 데르수 우잘라로 1975년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다.
이후에도 구로사와의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데르수 우잘라 이후 구로사와는 5년의 공백기 끝에 1980년 '카게무샤'를 만든다. 이 영화 조차도 코폴라, 루카스, 스필버그등의 전적인 지원에 힘입어 20세기 폭스사에서 자금을 댔기 때문에 제작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70mm 필름으로 촬영되어 시베리아의 아름다운 풍광을 잡아낸 데르수 우잘라는 그 수려한 영상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지혜로우면서도 소박한 순수한 인간 데르수 우잘라는 후기작 '마다다요'의 우치다 교수이며 또한 평생 영화 만드는 것 이외에는 다른 관심이 없었던 구로사와 본인의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는 캐릭터다. 구로사와의 영화에서 모범적인 영웅은 '붉은 수염' 이후 자취를 감춘다. 암울해진 그의 영화는 이제 문명을 비판하고 순수하고 선한 인간이 어떻게 파괴되는 가를 묘사하기 시작한다.
마치 구로사와 본인처럼, 말년의 데르수는 갈 곳이 없다. 시베리아의 대지로 돌아가기엔 이제 그는 너무 늙어버려 사냥감을 제대로 겨냥조차 할 수 없다. 러시아의 도시는 데르수에게 최악의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아르세니예프는 문명의 이기인 최신식 라이플을 주어 데르수를 시베리아로 돌려 보내지만, 데르수를 죽이는 것은 바로 그 문명의 이기다. 시베리아를 좀먹어들어가는 근대화의 물결은 끝내 데르수의 무덤 마저 파괴해 버리고, 아르세니예프의 추억 말고는 이제 데르수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다.
# by | 2007/06/13 05:20 | 明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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